기술자의 삶, 두 번째 이야기 : 도망가지말고 환경을 통제해보자

2025. 5. 9. 21:20기술자의 삶 : 철컷살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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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자의 삶, 두 번째 이야기 : 현장파악

 

정리에서 시작된 내 기술 인생


🛠 군대를 다녀오고, 내가 처음 일하게 된 곳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로 나와 처음 발을 디딘 곳은
다름 아닌 아버지가 운영하시는 머시닝센터,
CNC 밀링을 전문으로 하는 기계 제조업 현장이었다.

현장은 삐걱거리는 기계음, 절삭유 냄새,
그리고 쉬지 않고 돌아가는 공정 속도만큼
내 머리도 멈추지 않고 멍해지는 곳이었다.


🔄 버튼맨 – 아무것도 모른 채 반복의 노예가 되다

입사 후 1년 동안 나는 버튼맨이었다.
버튼맨.
말 그대로 기계 앞에 서서
가공이 끝난 제품을 꺼내고,
새로운 소재를 넣고,
에어로 칩을 불어내고,
사상하고, 다시 버튼을 누르고,
그걸 하루 종일 반복했다.

기술은커녕 소재 이름도 모르고, 공구도 구분 못 하는 나.
그저 눈앞의 루틴만 따라 해야 했던 시절이었다.
하루가 지루하다는 말도 사치였다.
“내가 이걸 왜 하고 있지?”라는 질문만 수십 번.

그럴 때마다 떠오르던 군대의 말.

“기계보다 사람이 싸니까 사람이 움직이는 거야.”

그 말이 처음엔 비참하게 들렸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니 현실로 체화됐다.
내가 왜 이 자리에 있는지, 생각도 잊은 채 살아갔다.


🔥 이대로는 안 되겠다. 무너지는 자존심과 도전의 시작

“3년만 버티자.”
그게 처음 마음이었다.
하지만 1년도 안 되어 마음이 식었다.
무심한 사람들과 기계처럼 반복되는 삶 속에서
나는 서서히 무너졌다.

하지만 그 무너짐 속에서 질문이 생겼다.

“능력도 없는 내가 여기서 할 수 있는 건 뭐지?”


🧹 정리 – 사소하지만 가장 강력한 시작

공장의 하루는 바쁘다.
절삭과 세팅, 사상과 납기.
그래서 정리는 항상 뒷전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 '정리'에 꽂혔다.
드래곤볼처럼 흩어진 볼트, 공구, 파츠들을 모았다.
분류하고, 닦고, 담고,
플라스틱 통에 정리했다.
내가 만든 질서였다.

그리고 공장장님께 말했다.
“이 통들을 올릴 수 있는 선반을 만들어주세요.”

그 결과,
시멘트 벽에 앵글로 만든 선반 위에,
노란 통이 깔끔하게 꽂히는 그 순간.

나는 뭔가를 ‘만들어낸’ 기분을 처음으로 느꼈다.


🔧 기술은 손끝이 아니라 정리에서 시작됐다

그날 이후,
나는 잔업을 하기 싫어하던 사람이 아니라
잔업을 원해서 남는 사람이 됐다.

정리하면서 생긴 변화는 환경이 아니라 ‘나’였다.
무질서 속에서 구조를 찾기 시작했고,
공구들을 보며 질문이 생기기 시작했다.

왜 이 드릴은 이 색일까?
왜 이 엔드밀은 이렇게 생겼을까?
초경과 하이스는 어떻게 다르지?

하나씩 물어보고 정리하다 보니
보지 않고도 공구를 맞출 수 있는 감각이 생겼고,
이제는 만져보면 날이 상했는지 아닌지도 알게 됐다.


🎯 나에게 정리는 정리가 아니었다

공장의 물건들은 20년 된 것들이 수두룩했다.
쌓여만 가던 부품들,
작동하는지도 모르는 공구들.
그걸 하나하나 정리한 게 무모한 도전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배웠다.

“정리는 사소하지만, 인생을 바꾸는 첫걸음이다.”

배우는 것도 좋고, 논문도 좋지만
정리 하나로 내 인생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공구를 분류하고, 환경을 바꾸고,
기계와 대화하고, 질문하는 사람이 되었다.


💬 그래서 나는 말하고 싶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다.
뭔가 시작하고 싶다면,
"그냥 해보라"는 말이 전부일 수 있다.

“책임질 수 있겠어?”
“그거 시간만 낭비야.”
“네가 뭘 안다고…”

그런 말들 앞에 고민하지 말고,
먼저 해보고, 느끼고, 깨지고, 내 것으로 만들어라.


✍️ 글을 마치며

나는 기계 앞에서 아무 생각 없이 버튼만 누르던 사람이었다.
지금은 여전히 기술자라고 부르기엔 모자라지만
적어도 질문할 줄 아는 사람, 환경을 바꾸는 사람,
자기만의 방식으로 도전하는 사람은 되었다고 믿는다.

누군가에게는 정리,
나에게는 시작이었다.

 

책임감있는 사람이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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